추석과 추도예배에 관하여

 

   중추절이 되면 성도들 가운데 제사 지내는 가정이 있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의 불안함 때문에 말씀으로 권면하며 기도하며, 그 어느 때 보다 긴장하는 때인 것 같다. 우리 주위에서 제사를 지내는 환경 가운데 자라나는 청소년이나, 결혼을 통하여 갑자기 제사 문제를 대하는 자매들 역시 많이 당황해하고 갈등하는 사람들이다. 이처럼 제사 문제는 아시아 기독인들이나 새로운 성도들에게 어려움을 주는 문제이다.

   한국의 예속은 그 뿌리와 변천과정이 매우 복잡하다. 주술적인 무속신앙과 풍수설과 불교사상과 유교사상 등이 혼합되었다. 고조선의 원시종교였던 무교에는 제사 풍습이 없었다. 무속에는 천신을 숭배하는 제천의 풍속이 있었을 뿐이다. 유교는 원래부터 내세도 구원도 영생도 없으며 본질적으로 현실중심적이다. 공자는 살아계신 부모에 대한 극진한 효도에 대해서는 지나칠 만큼 세심하게 가르쳤지만 돌아가신 부모에 대하여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제사 지내는 풍속은 유교의 부모에 대한 도리와 무속적인 천신 제사와 기존해 있던 불교가 합쳐져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성경에는 제사 지내는 대상이 '귀신에게' 라고 나와있다(고전 10:20). 중용에는 귀신의 덕은 위대한 것으로 말한다.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나 만물에 체재해서는 유외한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천하 사람으로 하여금 제명성복하고 제사로 받아들이면 양양하게 상공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좌우에 있는 것 같기도 하니 시경에는 신의 내격함이 헤아릴 수 없는데 하물며 무심할 수 있으랴'고 하였다.

   우리는 성서적 제사를 드려야만 한다. 성경에서 보면 아벨의 제사를 시작으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 믿음의 조상들이 모두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음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분명히 할 것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는 점이다. 제사는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거룩한 만남을 뜻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원하는 제사는 회개, 겸손, 의와 화해 그리고 거룩함이었다.

 

   여러 가지 문화상황에 처해있는 크리스천들은 복음이 문화에 따라 변질되지 않도록 그 문화를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변화시켜야 한다. 문화는 그리스도의 통치 하에서 성령의 능력에 의해 변화되어야 한다. 제사문제에 있어서도 안 믿는 형제나 이웃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들의 습관을 변화시키며 그들과의 접촉점을 찾아야 한다(고전 9:19-23, 벧전 2:9이하). 추도예배를 드릴 때 가족이 먹기 위한 상은 좋지만 죽은 자를 위하여 상을 차리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 그리고 지방을 붙이거나 절을 해서도 안된다.

   새로 예수 믿고 돌아온 가정에는 추도일이 돌아오면 교역자가 도와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조상숭배를 하다가 갑자기 중단하면 조상이 저주를 내려 가정에 우화가 생길지 모른다는 공포심을 안고 있기 쉽다. 그러므로 일주기 추도식은 교역자가 그 가족과 함께 진지하게 예배드리고 위로하며 격려하는 것이 좋다. 예수님을 오래 믿고 신앙이 제대로 잡힌 가정에서는 가장이 간단하게 자녀들과 친지들을 불러놓고 예배드리는 것이 좋다. 예배드린 후에 떠나신 분의 녹음된 육성을 듣든지 사진첩, 비디오에 담긴 모습을 보는 등 고인이 남긴 여러 가지 은혜스러운 이야기를 나누며 신앙의 뿌리를 다시 한번 심는 기회로 삼는다.

   일반적으로 추도예배는 3년 정도만 드리고 더 계속할 경우에는 가족들이 의논해서 해야 한다. 또 혼성가족, 즉 반은 예수 믿고 반은 믿지 않는 가정에서는 한 쪽은 제사 지내려 하고 한 쪽은 안된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상대방이 내 신앙을 시험하려고 고의적으로 이 문제를 들고나올 때는 한치도 양보해서는 안될 것이다. 과거의 우리 선조들이 이런 문제 때문에 순교를 당한 일도 있다. 그러나 불신 가족들이 악의에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제사를 지내야 되겠다고 고집하면 인내를 갖고 일단 내버려둬야 한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 제사 행위에 동조하거나, 참여하거나 음식 만드는 일은 삼가야 한다.

   기독인들은 언제나 기독교 진리만이 영원한 "구원의 길"임을 확신하고 이 진리의 왜곡에는 절대로 굴종하거나 양보의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될 것이다.

글 : 김찬욱(새생명교회 목사) / 월간 Voice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