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째 이어지는 한국사랑

언 더 우 드

    언더우드는 1859년 7월 19일 영국 런던에서 아버지 죤(Jon Underwood)과 어머니 엘리자벧(Elisabeth Grant Marie) 사이의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많은 뛰어난 발명품을 만든 아주 과학적인 사람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많은 자식을 사랑으로 키우신 인자하신 분이셨지만 언더우드가 4살 되던 때 갑작스레 돌아가셨습니다. 언더우드는 어렸을 때부터 형제들과 함께 성경구절들을 외우면서 신앙의 교육을 엄격히 받았고, 따라서 형제들과의 정이 대단히 두터웠습니다.

    언더우드는 어렸을 때부터 어떤 일에 몰두하면 다른 이들을 잊어버릴 정도로 집중력이 강했습니다. 이같은 집중력으로 남들보다 훨씬 더 빠르고 좋은 성적으로 학업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뉴 브런즈윅의 신학교에서 언더우드는 학과목을 열심히 공부하는 한편으로 전도 사업에도 열을 올렸는데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나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을 하며 전도와 학업을 모두 열심히 했습니다.

    언더우드는 4살 때 인도에서 돌아온 어느 선교사의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받아 선교사가 되기를 작정했습니다. 그는 인도 선교사가 되기 위해 신학교를 나오고, 오지의 선교를 위해 의학을 공부하는 한편 인도어도 능통할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누가 보아도 언더우드는 인도 선교를 위한 준비된 선교사였습니다.

     

    1883년 신학교 연맹 모임에서 언더우드는 알버트 목사님의 조선선교를 위한 설교를 듣고 '너는 왜 못가는가?'라는 주님의 메시지를 듣고 그가 인도를 위해 준비해 온 모든 것을 포기하고 조선선교사를 지원하게 됩니다.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날 언더우드는 한국 제물포항에 도착하자마자 서울에 가서 한국선교의 전초기지인 알렌이 운영하는 광혜원이란 병원으로 가서 약제사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낯선 땅, 지저분하고 전염병이 나돌고 미신이 판을 치는 조선 땅에서 언더우드는 오히려 이 땅을 낙원이라 생각하며 이 땅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언더우드는 다른 선교사와는 달리 서민들과 하층민에 관심을 가지고 '예수교학당', '구세군당'이라는 고아원을 세웠습니다. 이 학당은 후에 경신 고등학교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스며, 그가 우리 민족을 교육하기 위해 세운 연희 전문학원은 지금의 연세대학교로 역사를 계승하고 있습니다.

     

     

    그는 노도사(노천경)이라는 사람에게 세례를 주는 것을 시작으로 서울 정동의 자기 집에서 예배를 드리고 교회를 시작합니다. 이것이 정동교회(지금의 새문안교회)의 시작이 됩니다. 그해 성탄절날 이 교회에서 최초의 성찬식이 거행되고 1년 만에 50여명의 신자와 11명의 세례자를 낳게 됩니다.

     

    그는 목숨을 잃기 전까지 한국을 그리워했으며 이 땅을 사랑하고 걱정했습니다. 이 후 그의 5대째 까지 이어지는 후손들이 이 땅에서 지금까지 선교의 일을 감당하고 있으며 그의 업적을 기리며 고종황제는 1906년 태극훈장을 내리고 1963년에는 광복 18주년을 맞아 다시 대통령상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의 이름은 하늘나라에서 우리 나라 백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선교사로서 영원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

     

생명줄성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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