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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신앙을 잃게 되나

"나는 마귀를 믿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중세기의 신화입니다. 그런 것은 없습니다" 이것은 교사가 되기 위해 대학에 재학중이던 여학생이 한 말이다. 그 학생은 그리스도인의 가정과 교회에서 자라난 학생이었다. 그녀가 다니던 교회의 목사는 도움을 주기 위해 그 학생을 내게 데려왔다. 그 학생은 돌연히 지난 날의 경건한 신앙 유산과 성경을 던져 버린 2학년생이었다.

나는 그 학생이 거절하고 부인하는 내용의 말을 조금 듣다가 다음 두 가지를 묻게 되었다. 첫째로, "학생은 항상 이런 입장을 취하지는 않았지?"라는 물음이었다. 이에 대한 대답은 "그렇습니다"였다. 둘째로, "학생은 모든 학생들에 대한 대학교의 요구대로 성경과 종교에 대한 과목을 수강한 다음 이런 입장을 취하게 된 것이지?" 처음에는 부인하더니 사회학을 공부하다가 신앙에 손상을 입게 됐다고 고백했다.

실험실 기사가 되기 위해 대학에서 공부하던 한 젊은 부인이 전공에 관계없이 필수 과목으로 이수하도록 되어 있는 종교 과정의 교과서를 내게 가지고 왔다. 그 부인은 "이 책이 나를 혼란에 빠지게 합니다"라고 했다. 그 교과서는 페이뻐(Pfeiffer)교수가 쓴「구약 성경의 책들(The Books of the Old Testament)」이란 제목이 붙어 있는 것이었다. 나는 이 책을 가지고 있다. 이 책 78 page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이야기와 역사, 공상과 사실에 대한 우리들의 구별은 대부분의 구약 성경 이야기들에 적용시키지 않는다. 그 이야기들은 순수 소설(아담, 노아, 삼손)에서 순수한 역사(다윗의 전기와 느헤미야 실록)에 이르는 모든 것들을 말하고 있다. 전문적인 저자들에 의해 쓰여진 것을 제외한 구약 성경(창세기-사무엘 상)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입으로 전달된 이야기들과 관습들을 다시 쓴 것이다. 이것이 이야기들 가운데 실제와 상상에 대한 구분이 없게 된 설명이 된다."

이 책의 저자는 하버드 대학 구약 학과의 과장이었다. 그는 특별히 목회자가 되기 위해 훈련받으러 온 젊은이들을 위해 구약 성경의 소개서로 이 책을 썼고 가르쳤다. 오늘날 미국에 있는 거의 모든 대학생들과 목회자가 되려는 자들이 받게 되는 교육이 이와 같은 것이다.

대법원이 초등 학교와 중·고등 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칠 수 없도록 했을 때 우리들의 세금과 보조로 운영되는 대학에서 성경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을 어째서 가르치지 못하도록 하지는 않았을까?

내가 아는 청년이 초등 학교 교사가 되기 위해 교회와 연관된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모든 학생들이 이수하도록 되어 있는 성경 과목에 관해 배운 내용을 가지고 나와 말을 나누었다. 후에 나는 그 교과서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책은 리처드 허드(R..Heard)가 쓴「신약 성경 소개(An Introduction to the New Testament)」란 제목의 책이다. 이 책 40 page에서 예수님의 기적들에 관한 다음의 글을 볼 수 있다.

"기적 자체들을 평가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 기적들을 말한 목적은 분명하다. 예수님의 권능을 보인 것으로 폭풍을 잔잔케 하고, 물위를 걸으며, 많은 무리를 먹이고, 무화과나무를 마르게 하고,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켰다. 까다롭지 않은 시대에 위대한 인물들과 관계된 그러한 이야기들이 급속히 생겨나 널리 퍼지게 된 것은 그 진실을 쉽게 받아들이는데 대한 경고가 된다. 구전을 믿을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몇 개 되지 않는 이런 이야기들을 신뢰하는 데는 놀라움이 있을 뿐이다"

이런 기적들은 순진한 사람들을 어리석게 만드는 꾸민 이야기들이라고 교회에 의해서 세워진 대학에서 온갖 종류의 배경을 가진 젊은이들에게 가르쳐짐으로 성경 가운데 더 많은 기적들이 나와 있지 않은 것을 다행스럽게 여긴다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세뇌를 받은 젊은이들이 아직도 믿음을 유지하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기적이라 할 수 있다. 위와 같은 가르침을 매일 접하면서 믿음을 지키고 있다고 여겨지는 자들마저도 몇 년 후에 나타날 의심들을 축적하게 되는 것이다. 이 가르침은 학생들에게 해를 줄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장래를 위해 투자하는 수고와 돈에 좋지 못한 자료들을 제공하는 것이 된다. 파괴적인 비판 때문에 학생들은 부정적인 열매만을 거두게 된다. 학생들은 자신의 믿음과 자신들을 빼앗길 뿐 얻는 것은 없다.

학교와 연관된 교회에 나가는 한 여자 청년이 그녀의 환멸을 편지에 써서 보냈다. 그 중에 적혀 있는 것을 옮겨 보겠다.

"지난밤에 남학생들은 모든 여학생들이 노래를 부르게 했습니다. 너무도 많은 학생들이 술에 취해서 노래를 부를 수 없었습니다. 크리스천 대학으로써 도덕은 엉망입니다. 학장은 최근에 교지에다 클럽 룸에서의 부도덕한 행위에 관한 글을 실었습니다. 성경이 단지 한 다른 역사책으로만 여겨지는 상황에서 어떤 것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가 호머(Homer) 정도로 나열되어 있으니 지옥은 비웃음을 받고, 천국은 신화에 불과한 것으로 가르쳐질 수밖에 없습니다. 도덕적인 삶에 대한 어떤 자극도 전혀 볼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여자 청년은 썩어빠진 부도덕인 새 도덕을 정확하게 본 것이다. 우리 나라(미국)가 어째서 이런 길을 가고 있는지 그녀는 적절한 설명을 한 것이다.

사람들은 자녀들의 보다 나은 장래를 위해서 유명한 학교에 자녀들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예들은 모두 그 유명한 학교들에서 가르쳐진 내용이 소개된 것이다. 이런 학교에 보내진 자녀들이 도움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저주 아래 놓이게 된 것이 아닌가! 우리들은 누구의 인준을 더 구하고 있는지, 하나님의 인준인가 아니면 사람의 인준인가. 내가 소장하고 있는 자료들로부터 더 많은 것을 말할 수 있지만 이 정도로 충분하리라 생각된다.

이 불신앙은 계속되어 최근 하버드 신학교 학감이 다음과 같이 말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들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차 모른다. 하나님은 더 이상 일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하는 어떤 것도 볼 수가 없다. 우리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멀리 있다" 이런 식으로 목회 후보생들이 훈련을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 없는 인간들이 그렇게도 소경이 될 수 있을까?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들에서 하나님의 솜씨와 설계를 볼 수 없다는 자들이 누구인가?

간략한 역사

1517년 마틴 루터는 당시 교회가 가르치고 행한 것들이 성경의 가르침과 달랐던 것을 지적하기 위해 95개 조항을 내걸게 되었던 것이다. 성경을 조심스럽게 살핀 사람들은 그 진리를 즉시 알게 되었다. 종교 개혁이 시작된 것이다. 100년간 영광스럽게 그 일이 진전되었다. 마귀는 깊은 불안을 느끼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는 일은 사람들과 나라들이 가는 길을 완전히 바뀌게 한다. 그때에 배도한 교회의 연합 세력은 성경 말씀을 공부하고 그대로 믿는 신자들을 없애기로 했다. 역사적으로 이것은 30년 전쟁(1618-1648)이라고 불리고 있다. 이것은 성경을 순종한 자들과 종교적이지만 성경의 가르침을 중히 여기지 않고 순종치 않은 자들과의 종교 전쟁이었다. 이 전쟁이 끝났을 때 개신교였던 나라들도 현재 그대로이고 구교였던 나라들도 그대로 있다. 그들의 운명은 결정되었던 것이다.

나눈 자

이 전쟁이 있고 난 다음 교회를 정화시키려는 노력이 있었다. 세상과의 성별을 묻는 일에서 시작이 되었다. 어느 교단도 100년 이상 성경 말씀에 충성스러움을 지키는 교단은 없다는 역사의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다. 1650년부터 1725년에 걸쳐 경건주의 자들은 성경의 표준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했다. 그들은 외부의 반대 세력들에 대해서는 성공적으로 싸워 자유를 얻었으나 내부의 세력으로 말미암아 매우 위험스럽게 되었다.

우리들이 열심히 싸워야 할 자들에 대해 유다서가 경고한 자유주의 자들이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최고의 권위로 받아들인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과의 구분이 예일 대학의 역사학 교수인 워커(Walker)가 쓴 「기독 교회의 역사(A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497 page에 나와 있는 경건주의 자들의 생활에서 알 수 있다. "참된 그리스도교는 생활에서 나타나는 법이다. 그 정상적인 시작은 영적인 변화로써 의식적인 중생이 된다. 스페너(Spener)는 영국의 청교도들과 같은 금욕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먹고 마시는 것과 옷차림에서 삼가 할 것을 가르쳤고 당시 루터 교회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겼던 극장에 가는 것과 춤추는 것과 카드 놀이를 거절했던 것이다. 스페너(Spener)의 노력은 심한 반대에 직면했고 큰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이단으로 비난받게 되었다. 루터 교회의 표준들로부터 의도적으로 떠나려는 것이 보였던 것과 당시 루터 교회의 정통성과는 전적으로 그의 정신과 이상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의 일은 교리에 대한 신학적인 해석이나 신조들로부터 성경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포함됐다"

성경에서 어떻게 멀어지게 되는지 주목해야 한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 점차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불려지는데 극장에 가는 것(부도덕한 내용의 TV 시청)이나 옷차림이 이에 속하는데 오늘날 믿음을 파괴하는 두 개의 큰 요소가 된다. 성경 말씀에 비추어 바른 생활을 하는 자가 틀렸다고 비난을 받게 되고 교회 지도자들이나 일반적인 종교인들의 생활을 표준 삼아 살게 되면 인정받는 것이 세상의 형편이다. 오늘날에도 같은 비난이 판치고 있다. 성경 말씀대로 사는 자들은 이단이라 비난받고 세상적인 사람들은 오히려 정상적인 교회로 인정되고 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하셨다.

성경대로 믿는 자들

'대수롭지 않은 것'과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필수적인 것으로 여겼던 경건주의 자들을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하겠다. 1670년 스페너(Spener)가 콜레기아 피에타테스(Collegia Pietates)라고 부르는 가정에서의 성경 공부를 시작했다. 1675년 스페너(Spener)는「피아 데시데리아(Pia Desideria)」라는 제목의 책을 썼는데 그 책에서 당시 루터 교회가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던 극장에 가는 것, 춤추는 것, 카드놀이 하는 것들을 거절했고 먹는 것과 마시는 것과 옷차림에서 주의할 것과 논쟁을 줄이고 생활의 변화와 성경 공부하는 것을 강조했다. 1691년 경건주의 자들에 의해서 할레(Halle) 대학교가 설립되어 1694년 개교하게 되었다. 1698년 프랑케(Franke)가 교수의 일원이 되어 1727년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 대학교에 남아 있었다. 이때에 부자인 진젠도르프(Zinzendorf) 백작이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그의 마음은 무엇인가 실제적인 것을 간구하게 되었다. 1722년 그는 재물을 바쳐 경건주의적인 생활과 일을 위해 헤른후트(Herrnhut)를 설립하게 되었다. 1727년 그는 그의 모임과 더불어 당시 보헤미야에서 심하게 핍박받았으므로 도피처를 찾던 허쓰파(혹은 모라비안파)〈Hussites, Moravians〉에 가입하게 되었다. 그래서 허쓰파와 경건주의 자들이 연합하여 모라비안이라 부르고 이어서 바른 성경 가르침을 전파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그들의 선교 열심은 국내보다 해외 선교지에서 훨씬 많은 회원을 얻게 하였다.

1736년 존 웨슬레(John Wesley)는 영국 교회를 대표하여 미국 조지아에 선교사로 가게 되었다. 거기에 있는 동안 웨슬레는 진젠도르프(Zinzendorf)의 자리를 이어 받게 된 모라비안파의 사람인 스판젠버그(Spangenberg)를 만났다. 스판젠버그(Spangenberg)는 웨슬레(Wesley)에게 하나님의 영이 그의 영에게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증거를 가지고 있는 지에 대한 것과 예수님을 아는지에 대한 것을 묻게 되었다. 웨슬레(Wesley)는 만족스러운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는 마음에 깊이 걸리는 바가 있어 하나님께 관한 것을 이들과 잘 대화하고 싶어서 독일어를 공부하게 되었다. 1738년 영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피터 보러(Peter Bohler)라는 모라비안파 목사를 알게 되었다. 1738년 5월 24일 모라비안 교회에서 저녁 예배를 드리는 동안 루터의 주석을 듣다가 웨슬레는 변화를 받았고 나아가서 나라를 변화시키게 되었다. 얼마 후 영국에는 영적 부흥이 있게 되었고, 감리교회가 미국에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오래 전 독일에서 경건주의 자들이 성경에는 '대수롭지 않은 것'이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담대히 지켰던 자들에 의한 많은 결과들이 오늘날에도 남아 있다. 프랑스에서는 1572년 8월 24일 성 바돌로매의 날 대학살 사건이 일어났다. 약 100년 후인 1685년 위그노(Hugenots-프랑스 개신교도)들을 죽이고 도망가게 한 낭트 칙령(Edict of Nantes)이 폐지되었다. 이때에 프랑스는 가장 부지런하고 훌륭한 시민들을 잃게 된 것이다. 영국에서는 영적인 부흥이 절정에 이르고 미국에서도 부흥과 자유가 따라오게 되었는데 프랑스는 단두대와 피 흘림의 혁명의 회오리바람을 1789년 뿌린 대로 거두게 된 것이다.

성경 의심 자들

모든 것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고 하면서 비본질적인 영역에 속한 것들을 추방하지 않는 것보다 더 설명적인 역사는 없다. 그러나 성경에는 '대수롭지 않은 것들' 혹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 들어 있다고 믿는 자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여러분이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이 구별은 경건주의 자들이 일어났던 1675년에서 1700년 사이에 있게 되었다. 1723년 할레(Halle) 대학교에서 크리스천 월프(Wolfe)라는 교수가 다음과 같은 교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수학과 같은 논리적인 확실성에 의해 논증될 수 있는 것만이 진실한 것이다." "기독교의 교리나 주장들(기적, 삼위일체 등)은 논증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하고 그렇지 못한 것은 믿을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므로 진리란 이성에서 나온 것이지 계시에서 온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이성을 최고의 권위로 삼은 것이다. 계시에 의해서가 아니고, 이성에 의해서 성경에 무엇이 중요한지를 결정하는 자가 챔피온이 된 셈이다. 어떤 성경 말씀의 가르침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고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들의 이성이 하나님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 된다. 이것이 합리주의요 이성 숭배인 것이다. 성경대로 믿는 자들이 일어나 그가 학교를 즉시 사임하도록 요구했으므로 프레드릭 윌헬름(Frederick Wilhelm) 1세 왕은 48시간 이내에 윌프 교수가 학교를 떠나도록 명령하게 되었다.

그가 학교를 떠났으나 할레 대학교에 다시 돌아올 음모를 꾸며 1740년 다시 복직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할레 대학교는 자유주의 학교가 되었고 경건주의 적인 것을 성취할 수가 없었다. 믿음이 손상을 받게 하는데 필요한 것은 보수주의 학교가 한 자유주의 자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학교나 교회가 스스로 깨끗하게 할 능력이 없을 때 파멸은 자명하게 된다. 모든 것들이 급속도로 움직이게 되었다. 1752년 세므러(Semler)가 할레 대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그는 경건한 훈련을 받았으나 자유주의적인 견해를 따르게 되었다. "어떤 성경 말씀들은 기록됐던 그때와 그 장소에 국한된 것이므로 지금은 거절될 수도 있다"라고 그는 가르쳤다. 워커(Walker)는 그의 책「교회사(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529 page에서 그에 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세므러는 성경 가운데 있는 영원한 진리들과 몇 권들이 기록된 때에 해당되는 요소들을 구분시켰다. 그는 모든 성경 부분들의 동등한 가치를 부인했다"

오늘날에도 많은 성경 말씀들이 이와 같은 주장에 의해 부패한 보수주의 교회 안에서 왜곡되고 있다. 이들 교회들이 가고 있는 내리막길은 새로운 길이나 보다 나은 길이 아니고 많은 종교 개혁 교회들을 파괴시킨 퇴폐적인 불신앙과 같은 길로써 자유주의로 잘 알려진 독일 고등 비평설이 나오게 한 것이다. 이 길은 여전히 같은 운명을 초래하고 있다.

성경 말씀의 진리는 이런 경우가 있을 것을 아시고 데살로니가 후서 2:10-12에서 밝히고 있다.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희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성경을 거절하고 왜곡하는 것은 파괴적인 일이 된다.

현대 자유주의의 아버지

현대 자유주의의 기초 작업은 월프(Wolfe)와 세므러(Semler) 때의 분위기에서 태어나 1753년, 프랑스 혁명이 있기 직전, 프랑스가 가장 타락했을 때에 살았던 부패한 프랑스 의사 진 아스트룩(Jean Astruc)이 쓴「추측(Conjectures)」이라는 책의 발행이 된다. 이 책의 완전한 제목은「모세가 창세기를 만드는데 쓰여진 것으로 보여지는 최초의 비망록에 관한 추측'(Conjectures Concerning the Original Memoranda which It Appears Moses Used to Compose the Book of Genesis)」이다. 이 책은 벨지움에 있는 부르셀에서 출판되었다.

진 아스트룩(Jean Astruc)의 생애는 정결치 못했으므로 성경을 읽게 되었을 때 찔림을 받았다. 그가 자신의 삶을 바꾸지 않거나 혹은 성경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가 행한 것 때문에 영원히 가서 있게 될 곳은 자기에게 행복하지 못한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스트룩(Astruc)의 생활은 캠벨(F.Camphell)에 의해서 쓰여진「불 아래 놓인 성경(The Bible under Fire)」이라는 책 8-9 page에 나와 있다. "아스트룩(Astruc)은 매우 나쁜 성격의 사람이었고, 매춘부들과 놀아났으며, 파리에서는 잘 알려진 사람이다. 볼테르(Voltair)는 그를 수전노와 난봉꾼으로 비웃었다" 위와 같은 것이 오늘날 자유주의자들이 성경 대신 받아들이는 초기 문서설의 요람이었던 것이다.

J 와 E 문서설의 출현

진 아스트룩(Jean Astruc)은 자신의 죄된 생활을 바로 잡기를 원치 않았으므로 성경을 바꾸어 보는 길을 택하게 되었다. 그는 유대인이었으므로 구약 성경을 원어인 히브리어로 읽을 줄 알았던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결정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삶에서 극히 세밀한 부분 즉 대수롭지 않은 것까지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를 온전히 따르든지 그렇지 않으면 월프(Wolfe)나 세므러(Semler)나 아스트룩(Astruc)과 같이 성경을 왜곡하게 된다. 창세기 1장부터 2장 3절까지에서 아스트룩(Astruc)은 하나님의 명칭이 능력을 나타내고 삼위일체를 가리키는 복수 명사인 엘로힘(Elohim)으로 나와 있는 것을 주목하게 됐다. 엘로힘(Elohim)은 세계를 말씀으로 있게 하신 능력 있는 우리들의 하나님을 적절하게 표현해 주고 있다. 그 다음 인간의 창조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이 담겨 있는 창세기 2장 4절부터 하나님은 자신을 여호와(Jehovah)라 부르신 것이다. 이 명칭은 하나님이 스스로 계신 분이시고, 인간을 사랑하고 돌보며 또 교제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인물들의 특징을 말할 때에 '홀쭉이' 또는 '뚱뚱이'라고 우리가 쓰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인간에게 자신을 분명히 알리기 위해 여러 명칭들을 쓰셨던 것이다. 마귀적인 아이디어가 아스트룩(Astruc)의 마음에 자리한 다음 유대인의 후예로 히브리 원어를 읽을 수 있어 의미를 잘 알면서도, 하나님께 대한 여러 명칭을 들어 말함이 분명한 이유가 될 수 없음에도 그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계시하시지 않았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모세는 접근할 수 있었던 다른 이방 종교 서적들로부터 성경의 첫 5권을 숙고해서 만든 것이다"라고 아스트룩(Astruc)은 주장했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위험스러운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기 위해서 어떤 설명을 구하는 때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런 자들을 대응하실 것이고, 강한 미혹을 보내사 거짓말을 믿게 하신다. 어떤 사람들은 엘로힘(Elohim)이라 부르는 신을 섬겼고 다른 거짓 종교는 여호와(Johovah)라고 불려지는 신을 섬겼다는 다른 거짓 종교들로부터 모세가 성경의 첫 5권을 단순히 만든 것이다 라는 아이디어에 아스트룩(Astruc)은 강하게 사로잡혀 앞서 언급한「소책자Ⅰ」을 출판했던 것이다.

오경 중에 엘로힘이나 여호와란 명칭이 나와 있는 것을 보아 모세가 어느 이방 종교의 서적들로부터 그 내용을 베낀 것인지 알 수 있다고 까지 아스트룩(Astruc)은 말했다. 창세기 1장에서와 같이 하나님이 엘로힘이라 불려진 엘로힘 종교로부터 모세가 그들의 신의 이름을 바꾸는 것을 잊고 베끼게 됐다고 했다.

창세기 2장 4절 이하에 나와 있는 여호와의 종교로부터 모세가 베낄 때 자신의 새로운 종교를 만들면서 신의 명칭에 대한 표준화를 잊어버리고 자신의 신을 여호와로 쓰게 됐다는 것이다. 새로운 종교를 만든다고 하는 자들은 여러 가지 어리석은 실수들을 하게 된다고 까지 했다. 그러나 모세나 하나님은 그의 역사에서 여러 명칭을 쓰게 된 것에 이유가 매우 분명하고 적절했다. 불행스럽게 이와 같은 주장을 받아들인 자들에 의해서 오늘날에도 이런 내용들이 학교에서 지켜지고 있다.

자유주의에는 과학적인 증거가 없다.

이 이론을 뒷받침할만한 한 올의 증거도 이제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것을 말해 두고 싶다. 수천의 성경 사본들이 전해지고 있지만 진 아스트룩(Jean Astruc)에 의해서 발명됐고 곧 이어 성경을 거절한 독일의 신학자들에 의해서 채택된 이 자료설을 뒷받침하는 것은 한 사본도 없다. 사람들이 성경을 거절하게 되면 그들은 성경을 단순히 믿는 것보다 받아들이는데 더 큰 믿음을 요하는 자신이 발명한 인간의 이론으로 기울게 된다. 무엇을 믿기 전에 사실들이 있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과학 시대에 우리들은 살고 있다.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는 것이 아니라면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누구든지 이 이론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사람이 있다면 나와 보시오. 이 이론은 극도로 빈약한 논문에 근거한 것이다. 이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절대로 없지만 소위 교육받았다는 자들이 성경과 이를 확고히 해주는 방대한 사본들을 거절하고 전적으로 증명되지 못한 이 이론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과학적인 자들이 되고 종교적이고 소위 교육을 받았다는 자들이 비과학적인 이론을 받아들인 것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은 순진한 자들은 되지 말아야 하겠다. 성경을 거절한 자들은 모든 성경이 성경에 나와 있는 기록 연대보다 후에 쓰여진 것들로 편집자들이라고 불리는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이사야서가 53장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너무도 명확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현재의 형태를 취하지 못했을 것이라 말하고 있다. 이사야 7장에는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이 나와 있는데 예수님 나시기 약 200년 전에 70인역을 번역한 자들도 잘 이해하고 그대로 번역했던 것이다. 초대 교회가 유대인들을 대항해서 효과 있게 사용했던 예언들과 예수님을 특별히 신임하지 못하도록 한 유대인 번역자가 이사야서 7장 14절에다 '젊은 여인'이란 말을 주후 90년경 처음 삽입해서 번역서를 발행했다. N.C.C.에 의해서 지원을 받고 있는 자유주의적 RSV 번역자들은 위의 내용을 RSV에 넣어서 판권을 얻어 놓았다.

이 모든 불신앙과 이사야서의 거절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1948년경 사해 근처의 동굴에서 사해 두루마리들을 발견할 수 있게 하셨다. 알브라이트(Albright)와 시카고 대학교는 글을 비교하고 방사성 동위원소 카본 14로 연대를 알아보았다. 이 이사야서 사본의 연대는 적어도 125 B.C.로 측정되었고 히브리어로 된 현재의 이사야서 사본과 일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것은 이사야서에 대한 자유주의자들의 추측이 전적으로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고고학의 발견들이 계속되면서 이런 일들이 발생되고 있다. 구약 성경에는 이스라엘 나라가 아닌 37 국의 왕들이 분명한 문맥으로 언급되어 있다. 고고학은 이들 참조들이 전적으로 정확하다는 것을 발견해 냈다. 고대 어떤 문헌도 이처럼 정확하게 증명된 적은 없다. 고대 희랍 작가 한 사람이 앗수르 왕들의 긴 목록을 작성한 것 중에 한 사람만 확인이 된 반면 성경에 나와 있는 모든 인물들이 소수만 제외하고 전적으로 정확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자유주의 자들의 추측들이 사실들과 부합되지 않으며 그들의 상상들은 틀렸는데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나? 성경은 과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부정확한 것으로 결코 판명된 적이 없는 반면 자유주의 자들의 추측들은 수를 셀 수 없이 사실들이 밝혀짐으로 당황해 하고 있다. 그들의 이론들은 자주 바뀌어야만 했고 아직도 계속 바뀌고 있다. 아무도 그들의 주장이 어디에서 끝날지 알 수가 없으나 그들의 관심이나 아는 것을 비추어 보면 하나님은 죽었다라는 것을 믿는데까지 도달한 것 같다.

아스트룩(Astruc)의 「추측」이 어떻게 학교와 교회에 들어 왔을까?

모세가 오경을 쓸 때 J와 E의 두 문서 혹은 자료를 사용했다는 진 아스트룩(Jean Astruc)의「추측」을 수년 후 1780년-83년 사이에 독일 신학자 J. G. 에이콘(Eichhorn)이「구약 성경 소개」란 제목으로 3권의 책에다 그 추측이 사실들인 것처럼 그대로 받아들여 쓰게 됐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거절한 자들은 전적으로 증명되지 못한 이 이론을 신임하고 존중하게 되었다. 한때 자유주의 교회 안에서는 이 문서설 즉 자료설이 교인들을 어린 아이들처럼 사로잡게 됐다.

아스트룩(Astruc)은 이 자료설을 그의「추측」이란 제목의 책에다 1753년 발표했다. 에이콘(Eichhorn)은 아스트룩(Astruc)의 추측들을「구약성경 소개」라는 3권의 책에다 옮겨 1780-1783년에 발행했다. 고팅엔(Gottingen)에서 이성주의적(합리주의) 교수였던 에이콘(Eichhorn)은 구약 성경 비평의 창시자로 자주 불리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아스트룩(Astruc)이 제 멋대로 쓴「추측」이란 책의 줄거리를 취해서「구약 성경 소개」라는 책을 통해 믿을만한 것으로 처음 발표한 학자이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자들 마저도 너무 우스워서 믿지 않는다.

1792년-1800년 사이에 영국 천주교 신부인 알랙산더 게데스(Geddes)가 "오경은 여러 문서들로부터 솔로몬 때에 편집된 것이다" 라는 새 아이디어를 발표했다. 이 추측은 아스트룩(Astruc)의 아이디어를 근거로 해서 더 발전시킨 것인데 솔로몬 때에 있었던 이 문서들은 한동안 여러 기자들이 만든 J와 E 자료들에 대한 기록들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라는 것이다. 이 가설에는 어떤 증거도 없었지만 모든 진리의 근원으로부터 떠난 학자들은 어떤 것도 쉽게 믿는 법이다.

자유주의 학자보다 더 천진스럽고 모든 것을 잘 믿는 자는 없다고 본다.

할레(Halle) 대학 교수인 J. S. 바터(Vater)는 3권으로 된 오경의 주석을 1802-5년 사이에 발행했다. 게데스(Geddes)는 상당한 진화 기간이 소요된 것으로 보아 오경의 완성을 솔로몬 때로 잡았으나, 바터(Vater)는 더 긴 진화의 기간을 주어 오경의 완성을 포로 때로 잡았다. 그러므로 성경의 연대를 늦은 연대로 잡는 일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를 보게 되었는데 이것은 자유주의의 귀표(Earmark)가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오경이 모세에 의해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인 주전 1600년경에 최근 성경 연대 연구에서 밝혀진 대로 쓰여진 것을 알고 있다.

바터(Vater)는 이 늦은 연대를 제시한 것만이 아니고 "오경은 39개의 다른 자료들의 부분으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라고 말했다. 이 어처구니 없는 가정은 쉽게 믿는 경향이 있는 자유주의자들 마저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곧 자료들의 수가 급속히 줄어들게 되었다. 이것은 자유주의 학자들에게 변화가 얼마나 용이한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그들은 확실한 것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이 이전의 모든 사실들을 대치할만한 것처럼 보이는 새롭고도 기발한 이론을 내세우면 사막의 모래처럼 쉽게 입장을 바꾸어야만 하는 것 같다. 만일 새 이론이 사실들을 제시하지 못하고 호기심만 불러일으킨다면 자유주의적 가르침인 '한날을 위한 여왕(Queen for a day)'이 되는 셈이다. 그러한 변덕스러움은 사려가 깊은 학자들에게 환영을 받지 못한다. "두 마음을 품은 자들에게는 정함이 없다"는 성경 말씀은 이런 자들을 묘사한 것이라고 본다.

D 문서 출현

W. M. L 드웨트(DeWette)가「구약 성경 소개에 대한 기고」라는 책을 1806년 출판했다. 이 책에서 드웨트(DeWett)는 요시야가 성전을 청결케 하다가 발견한 책은 실제로 오래된 성경이 아니고 전혀 새로운 생산물이다 라는 자기의 생각을 밝혔다. 모든 사람들을 속이고 심지어는 요시야 왕까지 우롱한 약삭빠른 종교적 발명가는 그것이 실제로는 자신의 새로운 발명품인데 보다 오래된 성경의 한 사본인 것처럼 말한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쉽게 우롱을 당했고, 그 추측은 퍼져 나가서 사람들은 그것을 정설로 받아들였고 그것을 순종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이 이론에 속을 사람은 오직 자유주의 자들뿐이다. 이것이 오늘날까지도 자유주의 자들이 말하는 신명기의 자료가 된다. 이 추측을 뒷받침할만한 단 하나의 증거도 세상에는 없는 반면 많은 옛 사본들은 오히려 그 반대가 사실임을 밝히고 있다. 자유주의자들에 의해서 이 자료에 붙여진 이름은 신명기의 자료라고 하여 D 문서라 했다. 이것은 자유주의 자들이 연대를 621 B.C.로 확실히 잡을 수 있다고 느끼는 유일한 자료가 된다. 왜냐하면 성경의 사실들은 알려지고 증명된 사실들이므로 그들은 이것을 성경의 사실과 멋대로 연결시켰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자들이 멋대로 D 문서와 연결시킨 내용은 역대하 34:14,15에 기록되어 있는데 고고학자들이 그 연대를 확정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의 오류는 자신의 작품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어떤 부정직한 종교인들에 의해서 신명기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훨씬 앞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실제로 주신 것이다. 이 D 문서설은 어떤 명백한 증거도 없는 것이다.

이제 우리들은 자유주의 학자들이 쉽게 믿게 된 성경 형성 과정을 보게 되었다. 진 아스트룩(Jean Astruc)이 J와 E 자료 또는 문서설을 제안했고, 에이콘(Eichhorn)은 이 제안을 신앙적인 것으로 끌어들였고, 드웨트(DeWett)는 D 자료 또는 문서설을 제안했다.

자유주의 학자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세 자료들을 살펴보았다. 이 주장들은 털끝만한 증거도 없는 것이고, 그저 상상과 추측들의 나열에 불과한 것이다.

자유주의 방법들과 오류들

자유주의적 주장에 드웨트(DeWette)는 또 다른 공헌을 했다. 그는 열왕기서와 역대기서를 율법서와 더불어 연구하고 비교한 다음 율법서에 기록된 것과는 다르게 백성들이 생활하고 활동했던 상당한 차이들을 발견하고는 대부분의 율법이 유대의 초기 왕들 때에는 없었던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이 불행스러운 추측에 대한 대답은 너무도 명확해서 학자라고 일컬음을 받는 자들이 이렇게도 큰 실수를 할 수 있을까라는 의아심을 가지게 한다. 인간들은 성경이 기록된 이후 그 성경의 표준에 맞추어 사는데 자주 실패했다는 것이 간단하게 알 수 있는 답이 된다. 나라 전체가 하나님의 지식에서 떠난 경우가 있었던 것이다. 드웨트(DeWett)의 방법을 따른다면 미국이 지금 따르고 있는 '새도덕'에 의한 생활을 보아 아직도 미국은 성경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미래에 주장해도 되는 것이다. 그런 것이 아니다. 간단한 대답은 이스라엘이나 유다의 백성들처럼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빛을 거절한 것이다.

1835년 J. F. 죠지(George)는 대담하게 히브리 문학(성경은 문학 이상의 것이다)을 세 시대로 나누었다. 첫째는 신화 시대로써 대부분 창세기로부터 민수기까지를 포함시켰다. 하나님의 말씀의 대부분은 실제로 신화라고 공공연하게 말함으로 자유주의자들이 어떻게 더욱 더 대담해지는가에 주목하기 바란다. 이와 같은 말들을 모든 학생들이 전공과 무관하게 대학교와 신학교와 대학들에서 요구에 따라 배우게 되는 모든 자유주의자들의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 개론에서 볼 수가 있다.

이 불신앙의 고리에 크게 공헌한 다른 한 사람은 1818년부터 콜레라 전염병으로 죽게된 1831년까지 베를린 대학교에서 가르쳤던 철학자요 신학자인 죠지 W. H. 헤겔(Hegel)이었다. 헤겔(Hegel)은 우주가 하나님의 발달의 계속적인 상태에 있다고 가르쳤고,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한 부분이다 라고 가르쳤다. 이 고대 범신론의 부활은 이미 독일에 존재했던 자유주의의 탁류에 합류하게 되었다. 후에 나타난 이 열매들 중 하나는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시고, 인간은 형제들이 된다는 교리로써 만일 범신론이 바른 것이라면 이 주장도 옳은 것이고 우리들 모두는 실제로 하나님의 한 부분이 된 것이다.

자유주의가 진화론을 싹트게 함

종교 개혁의 결과인 산업 혁명을 통하여 얻게 된 헤겔의 소경 같은 낙천주의는 자신의 구두끈을 조절하여 자신을 높이는 인간의 능력의 공헌으로 돌림으로 독일의 고등 비평가들로 하여금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문을 활짝 열게 했다.

진화론의 주장을 간략하게 말한다면 먼 옛날 어떤 연못에 있었던 단세포 동물로부터 시작이 된다. 이 생물은 스스로의 힘으로 발달되어 여러 세포를 가진 한 생물이 되고 자신의 재간으로 물고기가 되고, 수중에서도 살고 물 밖에서도 사는 양서 동물이 됐다. 어떤 것은 자신의 능력으로 자라서 파충류인 거대한 공룡이 됐다. 적은 파충류 가운데 어떤 것은 날으기로 하여 새들이 됐다. 포유 동물이 나타나더니 드디어 인간이 됐다. 이것이 합리주의(Rationalism)인데 성경에 나와 있는 창조의 내용을 믿는 것보다 더 큰 믿음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지만 속은 자들은 틀린 것을 쉽게 믿는다.

'모든 발전은 투쟁에 의한다' 라고 헤겔(Hegel)이 가르쳤다. 합론이 형성되기까지는 정론과 반론이 싸운다. 어떤 것이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발달될 수 있는가에 대한 헤겔의 기본적인 설명이 이것이다. 모든 것이 신의 부분이므로 정론과 반론이 신의 부분들이고 결과인 합론도 또한 신의 보다 높은 형태이다. 학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 이 오래된 범신론을 쉽사리 받아들이는 것을 볼 때에 놀랄 수밖에 없다.

연대를 늦게 잡는 것이 자유주의자들의 특징이다.

1826년 퍼디난드 C. 바우(Ferdinand C. Baur)라는 젊은이가 튜빙겐(Tubingen)에 가르치러 왔다. 그는 새 튜빙겐 신학교의 창립자였다. 실제로 새로운 것은 없었고, 묵은 불신앙을 보편화시킨 것이었다. 바우(Baur)는 헤겔의 아이디어를 취하여 현재의 신약 성경과 기독교 신앙은 계시의 결과가 아니고 두 교회의 파쟁적 불화의 산물이라고 가르쳤다. 정론은 베드로의 가르침으로 바울의 가르침(반론)과는 모순이 되고 반대가 되는 데서 신약 성경(합론)이 나오게 된 것이다 라고 했다. 바우(Baur)가 신약 성경이 위와 같은 방법으로 형성되었다고 보았으므로 이제 그는 신약 성경을 자신의 가설에 맞도록 미는 일을 시작했다. 이 일이 전에 받아들였던 성경 각 권에 대한 연대들을 다시 정하지 않으면 안되게 만들었다. 이 이론이 진화되는 시간을 주기 위해 성경의 각 권들의 연대가 전체적으로 늦은 연대를 잡게 된 것이다. 보다 연대가 앞선 성경의 책들은 반유대인적인 느낌을 주는 갈라디아서나 로마서, 고린도서와 같은 것이다. 계시록과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에게 친근한 것 같이 보여 초기의 책들로 했다. 요한 복음은 이와 같은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여 2세기에 쓰여진 것으로 했다. 이렇게 함으로 수세기에 걸쳐 학자들이 찾아낸 것들이 전적으로 증명되지도 않고 확립되지도 못한 시시한 것들에 의해 거절되고 버려지는 것을 보았다. 이 이론을 받아들이게 되면 신약 성경의 각 권들이 앞서 받아들여졌던 기자들에 의해서 기록되었다는 믿음에서 떠나게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요한이 죽은 다음 제 2세기에 요한 복음이 기록되었다면 요한은 요한 복음의 기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나머지 복음서들의 기자들도 그들의 이름으로 나와 있지만 그들이 기록했다고 말할 수 없게 되는데 그것은 진화론적인 과정의 발달이 기자들의 생애 보다 훨씬 긴 시간을 요하기 때문이라고 바우는 가르쳤다.

자유주의자들의 연대의 예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창세기부터 신명기 까지의 내용을 모세가 생존했던 1600 B.C. 경에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유주의 자들은 이 부분의 내용의 현재 형태를 400 B.C. 경으로 연대를 잡고 있다. 욥기는 성경 중에 가장 오래된 책으로 욥의 생애는 2200 B.C. 경에 살았던 사람들과 동등하다. 자유주의 자들은 욥기의 기록 연대를 600 B.C. 로 말하고 있다.

이사야서는 이사야 생존시 700 B.C. 경에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이사야에 의해 기록되었다. 자유주의 자들은 이사야서의 기록 연대를 그리스도 탄생 직전시로부터 900 A.D.까지로 다양하게 보고 있다. 사해 이사야 사본은 이 추측이 매우 부정확하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마태, 마가, 누가 복음들은 64 A.D. 경에 기록되었는데 자유주의 자들은 그 내용의 '발달'에 기간을 허용해서 수년에서 수십 년 늦게 연대를 잡고 있는 것이다.

자유주의가 공산주의를 싹트게 함

1835년 튜빙겐에서 가르치고 있던 스트라우스(Strauss)라는 한 다른 청년이 「예수님의 생애 (Life of Jesus)」라는 책을 썼다. 그는 바우(Baur)에 의해 교육을 받았는데 바우보다 한 발 더 나아가서 예수님이나 예수님의 기적들 가운데 가능한 대로 모든 초자연적인 것들을 거절했다.

그는 그의 책「예수님의 생애」를 통해서 복음서의 이야기들은 예수라는 이름으로 살았던 한 보통 사람에 관한 신화로 모두 만들어진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북음서가 전적으로 모두 역사적이라는 것을 완전히 부인했고, 모든 기적들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던 단순한 신화들이라 했다. 예수님께 관한 이와 같은 견해가 기정 사실처럼 되어 버렸고 몇몇 보수적인 학교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대학교들과 신학교들에서 사실상 가르쳐지고 있다. 우리 시대에 자유주의자들은 예수님이 당시 로마 직업 군인으로 근무 중이던 독일 병사의 서자라는 새로운 이론을 보태고 있다. 가장 무모한 이론들을 받아들이고 수년간 고지식하게 그것들을 가르쳐 온 자유주의자들은 잘못 발을 딛게 된 자들이 쉽게 믿어버리는 본성을 보이고 있다. 진실로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지 않는 자들에게 거짓을 믿을 수 있도록 강력한 미혹을 보내시게 된다. 그래서 '튜빙겐 사상 학교'가 있게 되었다. 복음서가 사도들에 의해 기록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기록 연대를 훨씬 늦게 잡고, 특별히 요한 복음의 역사적 성격을 거부하는 것이 그들의 사상의 요약이 된다.

1837년 유감스러운 혼란기에 한 청년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그의 부모들은 유대주의를 막 떠났던 때였다. 이 젊은이는 법학 공부를 시작했는데 철학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당시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철학과에 종교학이 들어있었다. 그의 마음은 개방되었고 열성이 대단했다. 성경대로 믿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영향이 그에게 있었더라면 제 2의 바울이 될 수 있었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칼 막스(Karl Marx)는 헤겔의 추종자들의 집단에 빠지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던 책은 모독적인 내용이 담긴 스트라우스의「예수의 생애」였다. 그 책은 소위 학식 있는 자들의 승인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막스는 이 책이 예수님을 받아들이는데 대한 적절한 견해로 생각했다.

이 책은 예수님께 대한 그의 초기 유대인들의 견해와 비슷한 내용을 많이 담고 있었다. 구약 성경은 설화들과 신화들을 그저 모은 것이라는 구약 성경에 관한 J E D P설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고 또한 가르쳐지고 있었다. 칼 막스(Karl Marx)는 1840년「공관 복음의 역사적 비평」을 쓴 브루노 바우어(Bruno Bauer)와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이 책이 밝히고 있는 바는 복음서들이 위조품이라는 것이다. 즉 예수님은 결코 사신 적이 없고 꾸민 것이며 기독교는 속임수다 라고 적고 있다. 막스의 젊고 인상적인 마음은 두 번 생각할 필요 없이 이 주장을 받아들여서 기독교를 파괴하는 논리적인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막스는 바우어와 함께 손을 잡고「무신론의 저널(JOURNAL OF ATHEISM)」을 발행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제 멋대로의 고안으로 자신을 파괴하도록 하시는 방법은 매우 흥미롭다. 오늘날 바로 그 독일 학교들과 과거 모든 동독이 사실상 이 사람의 철학 즉 그들의 직접적인 책임으로 생긴 공산주의 영향 아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유를 얻기 위해 어떤 것이라도 바칠 마음이 있었으나 여러 해 동안에 걸친 하나님께 대한 모독은 쉽게 속함을 받을 수가 없었다. 칼 막스(Karl Marx)가 있게 한 이런 가르침이 미국에 있는 거의 모든 대학과 대학교와 신학교에서 예외 없이 가르쳐지고 있다. 미국에서도 이런 가르침이 같은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째서 공산주의자들이 그들이 하는 것처럼 믿고 행동하는가

1847년 오늘날 공산주의가 취하고 있는 과정을 요약한 그의 공산주의자 선언문을 칼 막스가 내놓았다. 1867년 세계의 진로를 후에 바꾸어 놓은「자본」이란 책을 그는 내놓았다. 칼 막스(Karl Marx)가 무책임한 자유주의 자들의 교육을 불행하게도 받게 되었으므로 공산주의가 모든 종교를 적대시하게 되었다는 것을 이해하기는 힘들지 않다. 조상들의 세속적인 것을 반대한 성경의 어떤 가르침을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긴 작은 일이 공산주의가 일어나 자녀들을 죽이도록 가르치고 나라를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기게 한 것도 놀랄 일이 아닐 수 없다.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에게 무엇인가를 구한다는 것은 그 결과가 뻔한 것이다. 이 나라에 흉악한 행위가 증가하는 것은 성경이 가르쳐지지 못하게 한 대학교들과 학교들에서 교육을 받은 후 사람들이 어떻게 대량 살인과 거리의 소요와 약탈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가르쳤는지를 보이는 것이다.

성경이 거절된 상태에서 인간들은 자신의 존재를 설명할 길이 없고, 여기에 사는 이유나 죽은 다음 미래에 대해서 말할 것이 없게 되었다. 초자연적인 것을 부인하는 이단적인 가르침을 받아들인 자들은 죽은 다음에 대한 것을 신앙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현재의 생활은 오직 우리가 사는 동안 이 혹성을 적절하게 즐거운 곳으로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는 것만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심판이 없을 것으로 보기 때문에 만일 히틀러가 보다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수백만의 유대인들을 죽이는 것이라고 결정을 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좋은 세상을 위한 그의 방법이 되는 것이다. 만일 스탈린이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수백만 명을 숙청으로 죽인다면 그것은 그가 해야 할 자신의 일인 것이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없고, 실제로 옳고 틀린 것이 없고, 살아야 할 영원이 없는 것이다. 이 '성경은 없다 또는 아니다'라는 신앙은 알려진 모든 흉악한 행위에서 실제적인 적용을 보게 된다.

진화론은 자유주의와 공산주의의 기초이다

인간의 기원에 대한 사실이 자유주의자들을 더욱 괴롭히는 것 같다. 인간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자신들의 추측들을 뒷받침 할만한 이론들을 그들은 원했다. 바로 이때에 한 다른 광적인 이론가가 실제로 신앙이 있어야 믿을 수 있는 이론을 가지고 등장했다. 1859년 챨스 라ꓻ 다윈(Darwin)이「종의 기원(Origin of Species)」이란 책을 썼다. 이 책이 진화의 기초적인 이론의 시작이 된다. 1871년 그는「인간의 혈통(Descent of Man)」이라는 책을 썼다. 그때에 그레고르 멘델(Gregor Mendel)이 1866년 브룬의 자연사 학회(Natural History Society of Brunn)에서 한 글을 읽었는데, 그것은 유전에 대한 과학적인 발견의 출발이 되었다. 이와 같은 모든 종류의 변화를 정확하게 설명하고 다른 종류로의 변이를 논박하고 있다. 이것은 전적으로 과학적이지만 다윈의 것은 그것을 지탱할만한 쥐꼬리만한 증거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의 모든 이론에는 과학적인 증거가 하나도 없었고 지금도 없지만 속게 된 자유주의 학자들은 다윈의 낚시와 줄과 봉돌을 삼킨 것이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거짓말을 믿도록 강한 미혹을 보내신 것이다.

오늘날 진화론은 자유주의 신학과 공산주의 교리의 기초가 되고 있다. 둘 다 진화론이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다. 거의 모든 미국 학교들과 대학교들에서 진화론이 가르쳐지고 있다. 소위 교육받은 자들의 교육적인 천진난만함은 거의 믿을 수가 없다. 이론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일수록 사람들이 더 잘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성경 말씀에 대한 믿음보다는 인간들의 조상이 원숭이었다는 것으로 더 큰 위로를 삼는데 적극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 눈이나 귀나 재생산 조직 같은 우리 몸의 구조의 복잡성을 우연히 생긴 것으로 상상하게 하여 사려 깊은 인간들에게 지나치게 단순한 것으로 여기게 한다. 잃어버린 고리가 없는 몇 개의 멸종된 것들을 제외하고는 이 분야에 해당되는 화석들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매 단계에 빠진 고리들을 사냥해 내는 것을 그들은 조금도 꺼려하지 않는 것 같다. 모든 형태의 것들이 이론적으로는 지금도 진화하고 있어야만 하기 때문에 최고점에 이르는 과정이 지금도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형태들은 정해진 것이고 재생산이 불가능한 트기를 생산하는 경우 말고는 종(種)들이 선을 넘는 것을 거절하고 있다. 그 사실들은 확실하게 창조의 사실들을 뒷받침하고 있으나 아직도 '위대한 신봉자'들인 진화론자들은 그것을 지탱해 주는 절대적인 증거가 없는 것들을 믿는데 고집을 피우고 있다. 이것은 진실로 어처구니가 없다.

P 문서 탄생

우리는 이미 아스트룩의 J와 E 자료설을 살펴보았다. 우리는 드웨트(DeWette)의 D 자료도 다룬바 있다. 1853년 헙필드(Hupfield)는 E 자료가 D 자료와 P 자료로 나누어져야 한다는 이론을 전개했다. 이것은 바로 너그럽게 채택되었다.

견과 껍질 안에 있는 기초적인 자유주의

사립 대학들이나 세금의 보조로 운영되는 주립 대학들이나 대학교들에서 이루어지는 가르침은 1876년에서 1884년 사이에 쓰여진 J. 웰하우센(Wellhausen)의 글에 의해 형태를 갖추게 됐고 유행된 것이다. 그 실체는 다음과 같다. J 종교는 850 B.C. 경에 만들어진 것이다(종교란 말 대신에 자유주의 자들은 문서들이라 부르고 있다). E 문서는 750 B.C.경 만들어졌다. 그 다음 J 문서와 E 문서가 한 교정자(자유주의 자들은 편집자라 함)에 의해서 750 B.C.경에 결합됐다. D(신명기적) 코드는 621 B.C.에 발명된 것인데 요시아가 성전 청결시 발견된 것으로 되어 있다. 한 다른 교정자가 D를 이미 결합된 J와 E에다 550 B.C.경 더했다. P(제사장적) 코드는 500-450 B.C.경 만들어진 것인데 400 B.C.경 위의 모음에다 보탠 것이다. 이때 성경의 첫 번째 다섯 책들이 처음으로 현재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결합된 J. E. D. P가 성경의 첫 번째 5책들이 된 것이다.

자유주의 시험

오늘날 어떤 교육에서도 자유주의와 그 반대의 입장을 거의 즉각적으로 알아낼 수가 있다. 그들에게 J E D P 가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것이 가능하다거나 호의적인 대답을 한다면 그들은 성경을 거절하는 자들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소위 신정통주의 자들도 성경 거절자들의 그룹에 들어 있으므로 이 운동에는 희망이 있을 수가 없다. J E D P를 들어본 적이 없다거나 그것을 강력하게 거절한다면 그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성경대로 믿는 자들임을 알 수 있고, 이런 자들에게 희망이 있는 것이다.

오늘날 거의 모든 학교들에서 J E D P 가 가르쳐지고 있다.

이 J E D P 이론이 자유주의의 심장부요, 대학들과 대학교들에서 성경에 관해 가르쳐지고 있는 신앙 강좌의 기초가 된다. 이 이론은 그것을 뒷받침 할만한 증거가 절대로 없는 것으로 내가 열거한 바와 같이 억측에 불과한 것이다. 성경은 그저 긴 세월에 걸쳐 단순한 사람들 중에 전달된 신앙들과 여러 종류의 이야기들이나 전설들을 모아 결합시킨 집성물(혼합물)에 불과한 것이라고 부분적으로나 또는 전체적으로 믿고 있는 것이 대학을 거친 대부분의 젊은이들의 입장인 것이다. 사단이 위와 같은 거짓말로 소위 교육받은 지성인들을 바보가 되게 하고 있는 것이다.

J E D P 문서설은 N.C.C.나 W.C.C.가 친교를 가지게 한 바탕이다. 이것이 그들 사이를 하나로 묶는 띠가 된다. 시실 이것은 모든 자유주의 교회들의 공통 분모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학교에서 가장 교묘하게 우리 젊은이들에게 가르쳐지고 있다. 학교에서 성경이 떠나게 한 자들과 이것을 후원하는 목사들이 있는데 그들은 사람들이 거짓 책(성경)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인류에 대한 봉사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이 이 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교적인 형편이다.

주립 학교나 교회와 연관된 학교에서 청년들에게 기독교 신앙 소개를 위한 과정으로 가르쳐지는 구약 성경 입문서(Old Testament Introduction)나 다른 책들에서 J E D P설에 관한 것을 보면 그 학교나 교회가 성경을 믿고 있는지 J E D P 신화설을 믿고 있는지 바로 말할 수 있다. 신정통주의(Neo-Orthodoxy)는 J E D P설을 받아들임으로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도 줄 수가 없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자들만이 미국과 세계를 바로 세우는데 도움을 준다. 성경은 옳고 그른 것에 대한 명확한 도덕으로 권세 있는 표준이다. 성경이 없이는 우리 자신들을 파괴시키는 무법적인 무정부를 가지게 될 것이다.

오늘날 J E D P 설의 약간의 차이점

대학이나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J E D P가 단단하게 밀착된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J 문서가 하나님의 명칭이 여호와(Jehovah)로 불려진 모든 부분을 가리킨 것이라는 주장 대신에 흔히 유대인(Judean)이나 남쪽 자료를 가르킨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또한 E 문서는 하나님이 엘로힘(Elohim)으로 불려진 부분을 나타낸다는 주장 대신에 자주 에브라임(Ephraemitic)이나 북쪽 자료로 불려지고 있다. 1853년 E 문서는 E와 P로 나누어졌으므로 하나님은 P문서의 부분에서도 또한 엘로힘(Elohim)으로 불리고 있다.

요약하면 J E D P 문서설은 그라펠하우센(Grafwellhausen)이 제안한 이래 그대로 유지되고 있지만 시대와 저자에 따라 문자가 의미하는 바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신약 성경에서의 기초적인 자유주의

J E D P 설과 진화론이 구약 성경에 대한 자유주의 자들의 표준 신앙이 되고 나서 다음 단계로 신약 성경에 대해서도 문서설의 아이디어를 적용하는 것이었다. 1900년경 1832년부터 1910년까지 살았던 헤인리치 쥬리어스 홀츠만(Heinrich Julius Holtzman)은 마가 복음이 복음서들 중에 가장 오래된 문서요, 마가 복음은 잃어버렸던 것이지만 떠돌던 예수님의 언행들을 모아 가지고 짜맞춘 것이다 라고 말했다. 자유주의자들이 증명할 수 없고 잃었던 것이라는 이런 아이디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같은 인연이 J와 E 문서설의 배경에도 있었다. 독일 자유주의자들, 때로는 고등 비평가들로 불려지는데, 성경 각 권의 자료와 연대에 관해 추측하는 자들이 한 용어를 발명했는데 마가복음 외에 존재하는 이 새로운 자료를 Q 문서라 이름 지었다. Q 라는 문자는 독일어의 Quelle를 나타낸 것으로 자료란 뜻을 가지고 있다. 마태 복음과 누가 복음은 마가 복음의 거의 전 내용을 옮겨 쓴데다가 Q 문서로부터 그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들을 각각 보탠 것으로 이 복음서들은 결국 이들 자료들로부터 편집된 것이다라고 이 이론은 말하고 있다.

자유주의 자들의 생각

자유주의 자들은 각자가 자신의 재료(주장)들을 세우기 위해 어떤 것인가를 더 보태야 한다는 약점을 알고 있다. 예를 들면, 아스트룩(Astruc)의 J. E 이론에 바터(Vater)는 얼마 지나지 않아 두 개 대신 39개나 되는 자료들을 말하게 되었다. 자유주의 자들마다 먼저 있던 이론에 자신의 생각들을 보태는 까닭에 계속적으로 더해지고 변하는 자신들의 이론들처럼 성경이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져야만 했던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들은 또한 이들 초기 위조물(자유주의 자들의 정의에 의하면)들을 받아들이고 그런 것들이 권위적인 것으로 결심한 자들은 자유주의 자들이 J. E. D. P. 설과 진화론과 마가 복음을 Q 이론과 함께 받아들이는 자들처럼 잘 속고 순수한 자들로 믿고 있다. 개인들이 자신들에게도 있다고 아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서 보는 것은 심리적인 사실이다.

그러므로 자유주의 자들은 마가 복음이 가장 짧기 때문에 첫 번째의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더 긴 복음서들은 자유주의 자들의 이론이 자라는 것처럼 자라서 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자료들과 문서설에 매료되어 있고 그런 것을 뒷받침 할만한 증거들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들은 그저 또 다른 자료를 발명해서 그것을 Q 라고 부르는 것이다.

자유주의 영향의 확산

본래 제목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우리들의 대학이나 대학교나 신학교에서 신앙을 그렇게도 쉽게 잃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평범한 젊은이들이나 심지어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라난 청년들이 일찍 가르침을 받은 모든 것들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될 때까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지 못하게 되는 반역적인 방법으로 개성있는 개인들에 의해서 신학교와 대학교와 대학에서 J E D P 설과 진화론과 Q 와 함께 마가 복음이 가르쳐지기 때문이다. 이런 젊은이들은 감히 사랑하는 자들과 의논할 수도 없는 의심들을 가지게 되고, 자유주의 교수들과 의논해 봐야 유익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 젊은이들은 소망도 없고, 신앙도 없고, 표준도 없는 통로가 되어 어떤 거짓 이념에도 흔히 그렇듯 쉽게 먹이가 되는 것이다.

성경에 관해서 모든 교육받은 자들이 다함께 같은 생각을 가질 때까지 신앙 고백에 관계없이 우리들의 모든 대학과 대학교와 신학교에서 이런 이론들이 모든 학생들에게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편집자들과 지도자들과 국회 의원들과 대법원 판사들이 이런 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성경이 가르쳐지지 못하게 된 것이다. 고등 교육 기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이런 자들이 실제로 믿는 바가 성경이 단지 신화들의 모음이라면 당연한 귀결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대책이 무엇일까? 첫째로 자녀들이 대학에 들어가기 전 문제의 실상을 알게 해 주어야 한다. 성경에 대한 바른 믿음이 불구가 되기 전 문서설의 진상을 알고, 분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J E D P를 받아들인 자들이 바른 믿음을 회복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다음 단계는 무신론자들이 한 것처럼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지 못하도록 법정을 이용한 것처럼 거짓 가르침으로 더 이상 오도하는 일이 학교에서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성경이 제 위치에 다시 놓이도록 해야 한다.

진화론과 J E D P를 받아들이므로 인간들에게는 하나님이 없게 되었고, 옳고 그른 것도 없고, 천국과 지옥과 내세도 없게 되었다. 인간은 세상을 위해서 무엇이 최고인지 결정을 해야만 하는 동물에 불과한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히틀러(Hitler)는 유대인이 바람직하지 못하다 하여 500만 명을 죽이는 결정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스탈린(Stalin)은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수백만 명을 죽였다. 이런 신앙의 입장의 사람들에게 나나 여러분의 생명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들이 무자비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도 없고, 응답하실 하나님도 없으므로 행복과 안전을 가져다 줄 세상을 새로 만들겠다고 대계획을 설계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 대단한 망상이 사회주의요, 더 정확하게는 공산주의로 알려진 것이다. 이 계획을 추진하는 자들은 그들이 믿는 보다 나은 세계를 위해 교육적 조직이나 혁명을 통해 세계를 다시 만들려고 전력 투구하고 있다. 호세아 4:6에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라는 말씀을 기억하자. 사회주의 운동이나 공산주의 운동을 저지하기 위한 항거의 데모는 어째서 찾아보기 힘들까?

데살로니가 후서 2:11-12에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희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는 말씀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거절한 교육받은 자들이나 교육받지 못한 자들에게 나타나는 직접적인 결과로 3가지 기만이 있게 된 것을 분명히 알 수가 있다.

첫째의 기만은 각 나라들을 파괴하고 세계를 한 나라로 만든다면 더 이상의 전쟁은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 기만은 교육받은 자들이 사회주의가 이루어지면 모든 필요가 충족되고 훨씬 적은 시간의 수고로 소원하는 모든 좋은 것을 얻게 되어 더욱 많은 여가 시간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요한 계시록 13:7과 16절, 17절에 예언된 말씀을 보라.

세 번째 기만은 요한 계시록 13:8이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한 세계 종교가 된다. 에큐메니칼 주의는 오늘날 세계 종교계의 가장 큰 속임수다. 세계는 빠른 속도로 하나님과 성경을 부인하는 한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성경은 배도하는 교회의 마지막 성취가 이것임을 밝히고 있다.